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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일 2009-11-07 (토)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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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安重根·1879~1910)의사 하얼빈 의거 100주년

안중근(安重根)




안중근(安重根, 1879년 9월 2일~1910년 3월 26일)은
대한제국의 교육가, 독립운동가, 대한의병 참모중장이다. 본관은 순흥, 고려조 명현 안향의 26대손이다.  1905년 조선을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로 만든 을사조약이 체결된 것에 저항해, 독립 운동에 투신한 그는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사살했다.
 
어려서 안응칠(安應七)이라는 아명으로 불렸으며,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그의 세례명사도 성 토마스의 이름을 딴 토마스였다. 그래서 안중근 토마스(혹은 도마 안중근)라고도 불린다.
 
1911년 2월, 처형을 한 달여 앞두고 이국의 감옥에 앉아 그는 칼칼한 먹으로 글씨를 썼다.
"장부수사심여철(丈夫雖死心如鐵) 의사임위기사운(義士臨危氣似雲)."
사나이는 죽음에 임해도 마음이 강철 같으며,  뜻있는 선비는 위태로움에 처해도 기운이 구름 같다는 뜻이다.
 
 
안중근(安重根·1879~1910) 의사의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맞았다.
 
[:img1:]
▲ (왼쪽부터) 안중근 의사가 쓴
인무원려 필유근우’ : 멀리 고민하지 않으면 가까운 시일에 근심이 생긴다는 뜻이다.
국가안위 노심초사’ : 국가의 안위를 걱 정하고 애태운다는 뜻 .
                               여순 감옥에서 명주 천에 검은 먹으로 쓴 유묵
위국헌신 군인본분’ :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라는 뜻이다
                               자신의 감시를 맡았던 일본군 헌병에게 써주었다
임적선진 위장의무’ : 적을 맞아 앞서 나 가는 것은 장수의 의무 라는 뜻이다.
 
안 의사의 글씨는
                              ▲ 남성적인 박력
                              ▲ 엄정한 법도
                              ▲ 삼엄한 기개가 특징이며,
마제잠두(馬蹄蠶頭·말 발굽과 누에 머리) 형상으로 뻗어나간 한 획 한 획에 꺾일지언정 구부러지지 않는 기상이 깃들어 있다는 평이다.
 
생애
  황해도 해주부 수양산 아래에서[2] 현감 안인수의 손자이자 진사 안태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천주교 성당 건축에 참여할 정도로 독실한 신앙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안중근 자신도 1895년 천주교학교에 입학하여 신학프랑스어를 배웠다.
 
  1904년 평양에서 석탄 장사를 하다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는 것을 보고 1905년 조선을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로 만든 을사조약이 체결된 것에 저항해,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이어 삼흥학교를 세우고 돈의학교를 인수해 교육에 힘쓰다가 1907년 연해주로 건너가 의병에 가담하였다.
 
1909년 이토 히로부미러시아의 재무상 코코브쵸프와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에 오게 된 것을 기회로 삼아,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사살하였다. 곧바로 체포되어 일본 정부에 넘겨져 뤼순 감옥에 갇혀 1910년 2월 14일 사형 선고를 받고, 같은해 3월 26일 처형되었으며, 유해는 찾지 못했다.
 
같이 거사한 우덕순은 징역 3년, 조도선유동하는 각각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한편 법관양성소 출신 변호사 안병찬(安秉瓚)이 안중근을 위해 무료 변론을 하였다.
 
김구와의 인연
김구가 동학난에 참여했다가 실패한 후 안중근의 아버지 안진사의 청학동으로 이사하여 살게 되었을 때 처음 대면하였으며, 김구는 그가 총으로 사냥을 잘하며 남자다웠다고 평하였다. 또한 이토 히로부미 암살 후 그의 부인 등의 유족을 김구가 돌보았으며 안중근의 동생인 안공근은 상해에서 김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마지막 행적

2008년 3월 25일 국제한국연구원은 안중근이 사형선고를 받은 2월 14일부터 순국한 3월 26일까지의 행적에
대한 새로운 자료를 공개하였다.
  • 1910년 2월 14일: 오전 10시 30분 여순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음. 안중근은 당시    천주교 조선대목구(현재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뮈텔 주교에게 전보를 보내 사제를 보내줄 것을 요청함.
  • 1910년 2월 17일: 안중근은 고등법원장을 면담하여 한 국가의 독립을 위한 의병장으로서의 행동을    살인범으로 심리한 것에 이의를 제기함.
  • 1910년 3월 9일: 고해성사조제프 빌렘 당시 황해도 신천본당 주임신부에게서 받음.
  • 1910년 3월 10일: 빌렘 신부의 집전으로 안중근이 마지막 미사를 봉헌.
  • 1910년 3월 25일: 사형집행 연기. 세계적으로 크리스마스, 정월 초하루, 국왕의 탄신일에는 사형이    없다는 관례와 대한제국내의 의병활동이 강하게 전개되고 있어 통감부에서 이를 고려,   사형을 연기 요청. 이날은 대한제국 황제 순종이 태어난 건원절이었음.
    • 이에 안중근은 면회를 온 두 동생에게 당부를 남김. 당부 내용은 노모의 안부를 묻고, 불효의 죄를 용서를 청하였고, 장남을 천주교 사제로 길러 달라고 부탁. 동생 안정근에게는 한국의   발전을 위해 공업 또는 식림 같은 한국을 위한 일에 종사토록 부탁.
  •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사형 집행. 참석자: 미조부치 검찰관, 구리하라 감옥장.
  당시 안중근을 지원한 사람은 거부 최재형이었는데, 최재형은 안중근의 체포에 대비, 변호사와 상의할 정도로 안중근을 현실적으로 도왔다. 한편 안중근은 글씨가 뛰어나, 뤼순 감옥 수감 시 많은 유묵을 남겼고 보물 569호로 지정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되었다.
 
옥중에서 미완으로 끝난 저서《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을 남겼다. 2008년 3월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시 뤼순(旅順) 감옥 뒤편 야산 일대 등지에서 유해 발굴작업을 벌였지만 실패하였다.
 

 연보

  •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부 광석동에서 부 안태훈 모 백천조 씨 사이에서 출생.
  • 1894년: 16세에 김아려와 혼인. 김구와의 첫 만남.
  • 1896년: 부친 안태훈이 천주교에 입교.
  • 1897년: 19세에 천주교에 입교.
  • 1898년~ 1904년: 천주교 전교 사업. 천주교대학 설립을 추진하였으나 불발.
  • 1905년: 부친 안태훈 사망
  • 1906년: 삼흥학교, 돈의학교를 운영하였으며 서북학회에 가입.
  • 1907년: 석탄회사 삼합을 설립하였으나, 같은해 8월 1일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자 때 만주로  망명했다.
  • 1908년: 대한의병 참모중장으로 국내 진공 작전을 추진.
  • 1909년: 단지동맹 결성(동지 11명).
  • 1909년 10월 26일: 거사
  • 1910년 2월 14일: 일본제국 재판부는 안중근에게 사형을 선고.
  •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순국.
 

 평가

  • 혁명가 김산은 “춥고 긴긴 겨울밤에 학교 기숙사에서 우리는 수 많은 수행원들을 데리고 기차에서    내려온 이등박문을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어떤 식으로 저격했는가 하는 이야기와 한국독립을 위해 대담무쌍한 행동을 했던 사람들에 대한 많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라고 님 웨일즈의   《아리랑》은 수록하고 있다.
  •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안중근을 한국의 모세, 한국의 사도 바오로라고 부른다.즉, 안중근 의사를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모세의 애국심과 바오로의 신앙심을 가진 기독교인으로 평가한 것이다.
  • 고려대학교 사학과  노길명 교수는  안중근을  독실한 천주교 신앙과 애국심을 조화시킨 인물로 평하였다.
  • 미래사목연구소 황종률 박사는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정의의 하느님”의 뜻에 협력하는  것으로        하느님이 던진 물음에 대한 답이라고 평가하였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20세기 초 우리나라 반일애국운동가,”   “일제의 조선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애국열사”로 평가하며 북조선의 역사서인 “조선전사”에 저격장면,  계기 등을 자세히 소개하였다.
  •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제15차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사업     공동 추진’에 합의했다.
  • 안중근 의사 기념 사업회에서 안중근 의사 국제평화상을 제정하였다.
  • 김삼웅은 안중근의 동양평화 제안을 유럽공동체(EU)와 같은 것으로 평가한다. 당시 안중근의          제안내용은 한국, 중국, 일본이 동양평화회의를 결성하며, 여순을 중립화하고, 관련 3국으로            운영되는  동양평화회의본부를  여순에 설치한다.  또한 평화지역 창설,   공동개발은행과   공동화폐  발행 등이 포함되어 있다.
  • 안중근은 또한 문명개화를 통해 실력을 닦는 것이 한국 독립의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한 문명개화론자이면서, 일본의 보호정치가 한국의 문명개화가 아닌 국권침탈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바로  무장투쟁의 선두에 나선 행동가라고 서영희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평했다.
  • 안중근이 자신을 존경했던 일본인 간수에게 남긴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이라는 글귀는 현재 대한민국 국군의 표어 중 하나이다.

 

 가족 관계

  • 할아버지 : 안인수, 진해현감 역임
  • 아버지 : 안태훈(泰勳), 진사
  • 어머니 : 조마리아(趙마리아)
  • 부  인  : 김아려(金亞麗)
  • 여동생 : 안성녀 누시아(1881~1954), 독립운동가, 부산 천주교 묘지에 안장.
  • 남동생 : 안정근, 독립운동가, 1949년 상하이에서 사망.
  • 남동생 : 안공근, 독립운동가, 1939년 사망 추정.
  • 큰아들 : 안분도, 연해주로 피신하였다가 병으로 사망.
  • 작은아들 : 안준생(俊生), 1952년 11월 폐결핵으로 사망. 혜화동 천주교 공원묘지에 안장.
  • 둘째며느리 : 정옥녀
  • 딸: 안현생, 생사불명
  • 조카 : 안진생, 미얀마 대사 역임
  • 조카 : 안우생, 안공근의 아들 안우생의 묘는 북조선의 애국열사릉에 있다.
  • 손자 : 안웅호(雄浩)는 안준생의 아들이다.


 

 저서

그의 저서《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에는 일본이 3국 간섭으로 인해 뤼순을 청나라에 돌려준 뒤 한·중·일 3국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군항으로 만들어 세 나라에서 대표를 파견하고 평화회의를 조직하고 3국 청년으로 구성된 군단을 편성하고 이들에게 2개국 이상의 언어를 배우게 하며, 은행을 설립하고 공용 화폐를 만들자는 주장이 들어있다.
 

 유묵

  서예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안중근은 옥중에서 많은 글씨를 남겼다. 이것들 중 몇몇이 보물 제569호 안중근의사유묵(安重根義士遺墨)으로 지정됐다. 이 가운데 유명한 것으로는 보물 제569-2호인 "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음: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 뜻: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속에 가시가 돋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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