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조선국 절충장군(有明朝鮮國 折衝將軍) 行 의흥위(義興衛) 대호군(大護軍) 안공묘지(安公墓誌)

 

公의 휘(諱)는 훈(訓)이요 자는 훈지(訓之)니 순흥안씨 거족이라,

 고(考)는 숭선(崇善)이니 장원으로 등제하여 벼슬이 좌참찬(左參贊)에 이르렀고 시호(諡號)는 문숙(文肅)이다. 취(娶) 상호군(上護軍) 송천우(宋千祐) 之女하사 公을 생(生)하셨다.

公이 음직(蔭職)으로 봉훈랑(奉訓郞)이요 정통(正統)七年 기해(己亥)에 비로소 종묘승(宗廟丞) 사복직장(司僕直長) 통례문봉례(通禮門奉禮)를 拜하고 사헌감찰(司憲監察) 경시서령(京市署令) 충훈부도사(忠勳府都事) 사재부정(司宰副正)으로 되시고 천순이년(天順二年) 무인(戊寅)에 사헌장령(司憲掌令)을 拜하였으며 군기시정(軍器寺正) 사헌집의(司憲執義)로 옮기고 기미(己未)에 또 대호군(大護軍)으로 집의(執義)를 겸하시고 경기도를 순심(巡審)하시니 이것이 공거(公擧)也러라.

성화(成化)2年 병술(丙戌)에 상의원정(尙衣院正)에 승직하여 평안도(平安道)에 가서 백성들의 곤란한 점등을 순무하였으며 무자(戊子)에 당상관(堂上官)에 오르셨고 경인(庚寅)에 정침(正寢)에서 졸(卒)하시니 향년이 51세라 양주군(楊州郡) 해촌(海村)에 장사를 지냈다. 公의 위인(偉人)되심이 천성(天性)이 정량(正諒) 정직(正直) 하셨으며 벼슬에 임함에 부지런하고 삼가 했으며 청렴하고 공경하여 비록 훈벌(勳閥)의 출신이지만 화려하고 권세를 부리는 습성이 없었나니 사람들이 다 큰 그릇으로 지목하였다.

부인(夫人) 이씨(李氏)는 청주의 귀성(貴姓)이라 돈녕판관(敦寧判官) 후지녀(厚之女)로 정의(貞毅)하고 절조(節操)가 있어 거상 3年에 분묘 지킴을 게으르게 하지 않더니 30年이 지나 기미(己未)에 졸(卒)하심에 公의 묘(墓) 우(右)편에 부장(葬)하였다. 3男4女가 있으니 장왈(長曰) 우연(友淵)은 호군(護軍)이요 次는 우상(友商)이요 次는 우석(友晳)이니 부호군(副護軍)이요 장녀(長女)는 사복주부(司僕主簿) 이영기(李永期)의 아내이고 차녀(次女)는 돈녕도정(敦寧都正) 안상계(安桑鷄)의 아내이며 次는 춘천부사(春川府使) 이지형(李止泂)에게 출가하였고 次는 양근군수(陽根郡守) 심순도(沈順道)에게 출가하였다.

-----------------------------略---------------------

 

 

Copyright ⓒ2004  순흥안씨삼파종회 All rights reserved.